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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우리 학자들 ④- 유홍준

기사승인 2017.05.15  09: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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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

유홍준의 저서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연작을 단연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이에 비하자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책 『미학에세이』(청년사, 1988)로부터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요 내용이 그의 저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균도(周鈞韜)의 글을 그가 편역한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동양의 세계관과 유물론의 관점에서 미학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미학 관련 논의가 서양의 형이상학에 기반한 관념론의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 책이 지닌 특별함을 사뭇 다시 떠올려볼 수 있다. 『미학에세이』에서는 한자어 ‘美’의 어원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다. 즉 ‘羊(양)+人(사람)=美(아름다움)’라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羊(양)’은 고기와 젖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경제활동의 주요 제재였을 뿐만 아니라 토템 숭배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다. 이것이 인간 실생활에 영향을 끼쳐 머리장식과 같은 미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경험 이전에 주어진 본질적 차원의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인 교환 형식(사회적 관계 내지는 경제활동을 포함하는)에 바탕을 두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응인 것이다. 다시 말해 ‘꽃’은 그 자체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안에서 ‘꽃’이 ‘꿀과 열매’ 등의 물질적인 교환 형식이 연상될 때 비로소 아름다움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홍준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결국 인간 생활이 바탕에 놓인 것이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머릿속에 주어진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관념이 생겨난 바탕에는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실이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관념적인 미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차원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미는 곧 생활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양식은 특정한 문화적인 형식 속에서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후에 우리의 생활양식이 잘 반영된 고유한 문화유산을 찾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연작을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연작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진솔한 기행문 형식으로 작성됐기 때문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낳게 한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삶의 현장이 잘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발로 내딛고, 따스한 손길을 뻗어 어루만지고 있는 그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우리네 생활환경에서 비롯된 각종 문화적 풍습과 삶의 애환이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답사기는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라는 식의 단순 소개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둘러싼 전설과 벌통 2천 개가 소요됐다는 사실 등을 통해 당대 민중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남한강변에 위치한 신륵사 벽돌탑의 경우 조선 4대 나루 중 하나인 조포나루를 오가는 인근의 배들에게 일종의 이정표 구실을 했다는 설명에서 특정 종교의 문화유산이 사실은 실생활에 매우 필요한 수단과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을밀대에서 바라본 대동강의 황혼 풍경과 함께 이곳을 배경으로 한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를 떠올리며 도덕과 계몽으로 가려질 수 없는 현실적 삶의 애환을 떠올린다거나, 일본 규슈의 답사기에서는 강제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어려움을 딛고 어떻게 삶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더듬어나간다. 그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어느새 10여 권을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출간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답사기 연작에 담긴 방대한 양의 문화유산과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정보와 지식들을, 이 짧은 글에서 모두 담아내기란 애초에 요원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 이 글의 끝을 준비할까 한다. 그는 왜 그토록 문화유산 답사기를 서술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이미 우리는 하나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은 삶의 현실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문화유산이라는 흔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대답이 충분할까? 이즈음에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서두에 실린 명구 하나를 덧붙여보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어쩌면 그는 삶의 현실이 반영된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이 반영돼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급기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크기만큼, 딱 그만큼의 새로 마주한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함종호(서울시립대 강의전담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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