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김한성,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기사승인 2017.11.09  15:02:01

공유
default_news_ad1
   
 

인생이 항상 기쁜 일로만 가득할 수 없기에 사람은 실패를 맛보며 성장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하늘은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이에게 그에 걸맞은 선물을 보내준다. 여기, 숱한 위기에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은 부산 사나이가 있다. Man of Kwangwoon 열 번째 주인공, 중원의 마에스트로를 꿈꾸는 김한성의 이야기다.

※ 우여곡절 많았던 학창시절

김한성은 초등학교 5학년, 부산 효림초 축구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방과 후에 친구들이랑 축구하는 게 낙이었어요. 5학년 때 (효림초) 코치님이 운동장에서 공 차던 저를 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죠.” 아들이 공부하기를 내심 바랐던 아버지, 어머니는 두 살 터울 형의 설득 끝에 전학을 허락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형이 ‘한성이라면 시켜볼만 하다’고 말했대요. 지금 여기 있는 것도 형 덕분이죠.”

효림초에선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봤던 김한성은 사하중 입학 후 중앙 미드필더로 역할을 바꿨다. 포지션 전환이 신의 한수가 되었을까. 김한성은 중등리그 권역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부산의 축구 명문인 부경고의 일원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축구 인생에 첫 시련이 찾아온다. “쟁쟁한 선배들에게 밀려 1학년 때 2경기밖에 뛰지 못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목이 부러져서 2학년 내내 재활만 계속했죠. 슬럼프가 와서 축구를 접어야하나 고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한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노력의 가치를 믿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꾸준히 운동한 결과가 3학년 때 빛을 발했어요.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했고 팀도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자신을 신뢰해주는 멘토의 영향도 컸다. 바로 K리그 클래식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 중인 부경고 선배 이창민이다. “창민이 형이랑 같이 새벽 운동을 자주 했어요. 조언도 많이 듣고 가끔 둘이서 치킨도 뜯었죠.” 이창민의 플레이는 김한성에게 교과서와도 같다. “공격적인 성향을 띄는 저의 롤 모델인 형이에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강력한 슈팅까지 모든 방면에서 닮고 싶죠.”

부경고 시절 김한성이 달았던 14번 역시 이창민에게 물려받은 등번호다. 전 국가대표 미드필더 윤빛가람도 부경고 재학 시절 14번을 달았던 만큼 부경고의 14번은 그야말로 에이스의 차지였다. 당시 김한성이 팀에 얼마나 중요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대기만성

부경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김한성은 2017년 광운대 신입생이 됐다. 시작이 순탄치는 않았다. “발목에 박힌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서 제 컨디션이 아니었어요. 춘계 대회는 가만히 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스리백으로의 전술 변경도 김한성의 적응을 어렵게 했다. “오승인 감독님께서 저를 중앙 수비로 기용하셨어요. 여태껏 미드필더만 보다가 수비에 치중하려니 영 어색했습니다. 게다가 원광디지털대와의 U리그 개막전에서 사타구니 부상을 당해 뜻대로 풀리지 않았죠.”

실망할 법도 했지만 동료들의 응원이 김한성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처음 선배들을 마주했을 땐 무섭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친해지고 나니 착각이었음을 금방 깨달았죠.” 광운대에 먼저 와있던 부경고 출신 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전부터 알고 지냈던 (부경고) 형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또 룸메이트(양)태렬이 형, (최)현빈이 형도 편하게 대해줘서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묵묵히 때를 기다리던 김한성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시즌 중반 광운대의 수비 전술이 포백으로 돌아오면서 양태렬의 중원 파트너로 낙점된 것이다. 김한성은 공격 상황에서 전진한 양태렬의 빈자리를 메꾸는 살림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오승인 감독의 신뢰를 받은 그는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가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 태백에서의 터닝 포인트

김한성의 잠재력은 지난 7월 태백에서 열린 추계대학축구대회에서 만개했다. “경기를 치를수록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목표로 했던 4강도 해낼 수 있겠구나 싶었죠.” 분위기가 좋았던 만큼 아쉽게 패한 단국대와 8강전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경기력은 상대를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따르지 않았어요. 졸업하는 4학년 선배들과의 마지막 대회라 지금 떠올려도 안타까워요.”

올 시즌 광운대는 3권역 4위에 그치며 U리그 왕중왕전 진출에 실패했다. 김한성은 광운대에서의 첫해가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서는 대학무대가 겁나면서도 뛰다 보니까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왕중왕전에 나가지 못해 시즌이 일찍 끝난 건 많이 아쉽습니다.”

2년 차가 되는 내년 시즌에 대한 각오도 남달랐다. “상대 팀이 광운대를 무섭게 볼 정도로 강팀이 되었으면 해요. 저 자신부터 열심히 해야겠죠. 목표는 다치지 않고 꾸준히 출전하는 거죠. 부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요.(웃음)”

※ 소중히 지켜온 어린 시절의 꿈

   
 


김한성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지에 대한 질문을 듣고 담담하게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다. “프로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고 광운대 선배들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 품었던 축구선수의 꿈을 이룬 만큼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잘해드려야죠.”

김한성은 축구에 대한 애착이 크고 욕심이 많다. 추석 연휴를 맞아 내려간 고향 부산에서도 지인들과 풋살을 하며 감각을 유지했다. 우아한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헤엄치듯, 김한성의 이유 있는 자신감은 남들 몰래 흘린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김한성의 축구 인생이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바라본다.

[글= 이종성 동북아문화산업 14', 사진= 본인 제공, 아르마스 DB] 

kwfm seoch92@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광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