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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사람들은 배고픔을 못 참는다고?

기사승인 2018.10.05  0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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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운 기자의 세계는 지금

푸짐한 음식에 숨겨진 아픈 역사 최근 아일랜드로 여행을 간 사람이 올린 트위터 사진이 화제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생수와는 달리 아일랜드 생수는 물이 뚜껑 끝까지 차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올린 네티즌은 “물이 찰랑찰랑 차 있는 것을 보고 눈물나게 웃었다”며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마트에서 과자를 사 먹어도 양이 정말 많았다”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푸짐하게 제공되는 음식 문화의 배경을 알게 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왜 모든 음식을 넘칠 만큼 풍족하게 제공하는 걸까? 감자 없인 못 살아 아일랜드 사람들의 주식은 감자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국교가 성공회로 바뀌자 잉글랜드인들은 아일랜드인들에게 성공회를 강요했다. 이에 잉글랜드 지배층은 저항하는 아일랜드인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자영농들의 토지를 빼앗았다. 잉글랜드인이나 성공회로 개종한 일부 아일랜드인들만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됐고 나머지는 소작농으로 전락해 가난한 생활을 했다. 토지를 빼앗긴 대부분의 농민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감자를 대량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땅 밑에서 자라는 감자를 ‘악마의 식물’로 여기며 거의 먹지 않아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감자는 가뭄이나 장마 같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수확량도 많았기 때문에 가난한 소작농이 재배하기에 최적의 식량 작물이었다. 아일랜드 국민들이 일 년 동안 감자와 버터밀크만으로 버틸 정도로 감자의 비중이 컸다. 실제로 대기근이 오기 직전인 1844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남성 한 명이 하루에 6.35kg의 감자를 소비하기도 했다. ‘감자마름병’으로 인한 대기근 척박한 아일랜드 땅에서도 잘 자란 감자 덕분에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더 이상 굶지 않게 됐고, 불과 20년만에 감자는 아일랜드 국민의 주식이 됐다. 1760년-1840년 사이 인구가 150만명에서 900만명으로 늘었을 만큼 감자는 아일랜드가 유지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845년 미국에서 발생한 감자마름병이 북미 전역으로 확산되며 아일랜드도 직격타를 맞았다. 감자역병이라고도 불리는 감자마름병은 잎에서 증식하며 높고 습한 곳에서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당시 여름이었던 아일랜드는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려 감자마름병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었다. 비로 인해 포자가 빗물을 타고 땅에 스며들어 줄기 부분까지 퍼지며 모든 감자가 물러지고 썩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 하나라도 더 심고자 했던 농민들의 선택은 역설적으로 감자마름병의 주요 균인 갈색 부패균이 퍼지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같은 땅에서 생산량을 늘리려 감자 한 품종만을 촘촘하게 심은 결과, 병충해에 취약해진 것이다. 문제는 주식을 감자에만 의존하던 아일랜드 국민들의 상황이었다. 이미 지나친 감자 의존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대체할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당시 감자마름병으로 농사를 망친 지역이 아일랜드뿐만이 아니어서 외국에서 식량을 들여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들여온 식량 대부분도 항구도시와 그 인근으로 공급되는 바람에 식량 가격은 폭등했다. 식량을 구할 수 없던 국민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물론 감자를 망친건 신이었다. 하지만 그걸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영국인들이다" 대기근의 직접적인 원인은 감자마름병으로 인한 식량부족이었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굶어죽게 만든 것은 정치·종교적 문제였다. 사실 아일랜드 내에서도 밀을 비롯한 작물은 1845년의 흉작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었고, 심지어 가축의 수출은 대기근 내내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영국군에 의해 토지를 뺏긴 농민들은 곡물을 살 돈이 없었고, 그나마도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군대를 동원해 자국으로 가져갔다. 영국 지배층은 아일랜드 국민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죽 한 그릇을 주면서도 성공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는 영국 정부에 대해 신앙심이 강한 아일랜드인들은 반발하며 음식을 거부했다. 서양화가 존 미첼은 “감자를 망친 건 신이었지만 대기근으로 이어지게 한 것은 영국인들이다”라며 영국 지배층을 비판했다. 무능한 아일랜드 정부 설상가상 자유당이 집권하며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 자유방임주의에 따라 아일랜드 정부가 주도했던 밀 공급이 어려워졌다. 정부는 기근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어디로 유통되고 누구에게 가는지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져 빈농과 지주 모두가 몰락하자, 자유당 정권은 뒤늦게 무료 식량 공급을 주도하기 위해 해당 지역 납세자들에게 막대한 구제비용을 요구했다. 자유방임주의에 따라 정부가 국민의 생활에 직접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들이 구호비용을 부담하게 한 것이다. 갑작스레 막대한 비용을 책임지게 된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내쫓고, 결국 농사를 짓지 못해 빚을 지게 되는 악순환이 돌기 시작했다. 소작농과 지주, 지위 상관없이 모든 아일랜드 국민들이 기근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소화가 된다면 무엇이든 입에 넣어야 했을 정도로 굶주린 국민들 기근이 심각해지자 아일랜드인들은 소화되는 모든 것들을 가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굶주림에 지친 국민들은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먹지 않았던 해조류까지 채취해 먹었다. 아직까지도 이들이 많이 먹었던 적갈색 해조류에는 ‘아이리쉬 모스(Irish Moss)’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아일랜드의 당시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도 있다. 더블린 항구 방향에 있는 <기근Famine>은 작가 로완 길레스피의 작품으로, 7년 동안 이어진 대기근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야윈 아버지가 아사한 아들의 주검을 들쳐 메고 휘청거리며 걷는 모습, 뼈만 남은 사람들이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 등을 통해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굶주림으로 고통 받았던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고 나면 식당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입구까지 가득 찬 생수병을 보고 마냥 웃으며 넘기기 어렵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넘치도록 많은 음식을 먹으며 아픈 과거를 잊고 싶은 건 아닐까.

윤정운 기자 talk789@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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