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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기사승인 2019.08.29  00: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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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이은서 (미디어·17) 우리는 언제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한 것은 초등학생 때다. 흰머리 곱게 비녀로 정리해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외할머니. 매일 언니는 5천 원, 나는 3천 원 용돈 주시던 외할머니. 다른 어른들과는 다르게 어린 나보다 엄마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었던 외할머니. 내게 남아있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고불고불 전화기 선을 만지면서 엄마는 기차를 예매하고, 언니와 나는 꾸벅꾸벅 졸며 새벽에 일어나 기차를 탔다. 제천역에서 영천역까지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갈 수 있다. 승무원은 사이다, 달걀, 오징어, 과자가 담긴 카트를 끌고 물건을 팔았는데, 언니와 나는 승무원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사이다와 달걀을 먹으며 계속해서 변하는 창밖을 구경했다. 영천역에서 내려 커다란 버스를 타고 또 산으로 들어간다. 그 버스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 말고는 텅 비어 있다. 언니랑 노래 몇 곡을 부르다 보면 산속에 내린다. 그때부터 또 한 20분 걷는다.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엄마의 어릴 적 얘기를 듣다 보면 도착이다. 강아지와 닭 두 마리가 사는 작은 외가댁. 내게 남아있는 외가댁에 대한 기억이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나. 우리 네 가족은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장례식장에 갔다. 그때의 차 안의 분위기는 차갑고, 축축하고, 어두웠다. 처음으로 가보는 장례식장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장례식보다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컸고, 더 어두웠다. 화장(火葬)하기 전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 시간이 있었다. 어른들은 나가 있으라 했지만 나는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보는 시체였다. 피부는 말랐고, 눈을 꼭 감고 계셨으며, 편안한 표정 같았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엄마가 엄마를 보고 우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 엄마가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엄마는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아 마음이 가지 않았다. 엄마는 견뎠다. 강원도 영월부터 경상북도 영천까지 10살도 되지 않은 두 딸과 무거운 짐을 메고 꼬박 반나절을 달려 외가댁으로 갔다. 피곤한 티 내지 않고 외할머니의 일을 함께하고 저녁밥까지 만들고 새벽에 다시 강원도로 갔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를 위해 엄마는 견뎠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마지막으로 견디며 보내주었다. 엄마가 최근 많이 아팠다. 수술하는 날 수술실까지 엄마는 아빠의 손을 잡고 의사들과 함께 차갑고 긴 복도를 지났다. 서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수술방에 들어갔고, 우리는 엄마를 기다렸다. 예정 시간보다 수술이 길어졌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때 신에게 엄마 살아 나오게 해달라고 그 이상 뭐 바라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빌었다. 피가 잔뜩 튄 채로 담당 의사가 나와 우리에게 수술이 잘되었다고 말해줬고, 곧이어 많은 링거를 꽂고 힘들어하는 표정의 엄마가 나왔다. 약 일 년 정도의 긴 치료를 하고 엄마는 견뎌내고 있다. 엄마가 아팠을 때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과연 나는 엄마처럼 견뎌낼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상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견뎌낸 것이 아니라 흘려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편에 두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잡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부모님도 나 자신도. 언제 어떤 이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뭔가 억울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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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미디어광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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