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독자투고

기사승인 2019.09.24  00:11:29

공유
default_news_ad1

- 사랑과 일탈 사이

김동진(국문 14)
 
『무진기행』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가상의 공간 무진의 여행기를 표방한 허구적 이야기다. ‘무진’은 ‘안개로 가득 찬 나루’라는 뜻이다. 이 마을에 가득 찬 안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을 불가시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 피아의 구분을 지워버린다. 따라서 무진에서는 대상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화자는 무진에 가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한다. 그 이유는,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진에서는 의식적인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진에서는 항상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역전된다. 수시로 끓어오르는 성욕, 초여름마다 일어나는 자살, 외로움으로 가득 찬 공간인 무진은 그 자체로 이미 리비도와 타나토스의 표상이다. 따라서 성적 욕망의 묘사는 작품에서 숨겨지지 않는다. 한낮에 개들이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는 공간이 바로 무진인 것이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뿌려지는 단서들을 통해 독자는 서울이 어떤 공간인지 추측할 수 있다. 윤희중이 결혼한 아내는 “빽이 좋고 돈 많은 과부”로, 희중은 그녀를 “달아나 버렸던 여자에 대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 이 언급과 동시에 곁에 있던 인숙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희중이 아내를 향해 품은 ‘사랑’이 세속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서울은 이처럼 세속적 가치로 만연한 공간이다.
동시에 서울은 “책임”뿐인, 근대적 공간이기도 하다. 인간 이성의 강조는 자유와 선택 그리고 책임의 무게를 인류에게 가져왔다. 전근대의 가치판단이 신의 말씀이란 외재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근대에 와서는 개인의 이성적 사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인생에 놓인 무한한 선택의 기로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무진은 그런 의식적인 선택의 고리에서 벗어나 무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공간이기에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책임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공간이 된다.
희중은 무진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호명하는 아주 사무적이고 간결한 전보에 의해 자신이 무진에서 한 행동과 사고를 의식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이 충돌한다. 인숙과의 사랑이 진정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에 의한 ‘일탈’인 것인지. 그는 그것을 사랑으로 인정하려 편지를 썼지만, 이윽고 그것을 찢어버리고 서울로 향한다. 결국 희중은 인숙과의 사랑을 일탈로 치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가 서울로 올라가며 느낀 “심한 부끄러움”은 아마도 자신의 세속적인 성격과 마주했기에 불러 일으켜진 감정이리라. 
『무진기행』은 서울에서 벗어난, 유년시절을 담고 있는 공간에서 인간 의식의 한 겹을 벗겨내 무의식을 조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끝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이고 세속적인 서울로의 회귀는 결국 사회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개인의 존재를 드러낸다. 희중의 귀경이 일탈에서 일상으로의 복귀인지, 개인의 가치관과 무의식이 결국 사회에 의해 굴절되는 과정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 .

<저작권자 © 미디어광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